- 루드 벨져  뱀파이어 AU 입니다.


- 능력 변환은 벨져만 있고, 벨져는 무기를 다루진 않습니다. 시점은 벨져가 태어난지는 꽤 되었고, 그 이후 루드빅이 태어난 시점으로 생각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 본 글의 소유권은 @ffsdasa (에코) 님에게 있으며, 해당 글은 에코님의 생일 선물로 쓰여진 글 입니다. 무단 배포를 금지합니다.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언제나 선악을 초월한다.

 

-프레드리히 니체-

 

 

 

 

 

벨져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아주 아득한 과거를 떠올려야 했기 때문에. 눈을 감자, 마치 늘 기억했던 그 장면은 어제 겪었던 일인 것만큼 자세하게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자신은 허리춤에 두 자루의 검을 끼고 있었고, 다만 지금과 다른 것이라곤 자신의 눈앞에 애처로워 보이는 여인 한명이 잔뜩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맨발이었기에 엉망이 되어버린 흙먼지로 뒤덮인 발바닥에서 피가 조금 나오는. 그런 여인이 자신의 앞에 있었다는 것 외엔 그렇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인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100년은 지난 일이니까. 자신은 기사단장으로서, 그저 하나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국민의 안위. 여성 사이퍼의 폭주로 인해 그녀를 제지해야 한다는 임무가 떨어지자마자 빠른 추격이 이어졌다. 여인은 너무나도 손쉽게 잡혔다. 속도전에서는 항상 져 본적이 없으니. 여인의 근력으로는, 그것도 신체적인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이퍼 일수록 자신의 손에 잡히는 것은 너무나도 손쉬웠다. 여인은 벨져가 붙잡기도 전,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가쁜 숨을 내쉬는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분에 이기지 못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혹은 두려움 일지도 몰랐다.

 

내가, 여기서 잡혔다고 생각했겠지.”

 

“........”

 

당신은 몰라. 참으로 곱게도 자랐겠지. 나처럼 기구한 삶을 영위하는, 이깟 능력 하나 타고 났다고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 하는 나를. 당신은 알까.”

 

그 말에 벨져는 겨누었던 검을 치웠다. 바닥에 쓰러진 여인은 그러나 이내 품속에서 손가락 두 개쯤을 겹쳐 놓은 작은 단도를 꺼내들곤 웃었다. 여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나, 그것은 마치 피눈물과도 같았다. 여인이 폭주한 이유는 흔하다면 흔하고, 안타깝다면 안타깝다는 이야기. 결혼이 순탄할 줄 알았으나, 그러한 남편은 오직 술을 마시지 않을 때였고, 대공황으로 인한 사업의 실패로 인해 손찌검의 횟수가 늘어갔다. 다른 여인을 만나고 오는 일은 허다했고, 자신의 아이까지 때리기 시작했다. 여자가 보호할 수 있는 힘은 다 한 것이리라.

 

저주하겠어.”

 

“.. 날 저주 해 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아니. 여인은 새초롬하게 웃었다. 마치 아까 전까지만 해도 울던 여자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여인은 가장 화려하게 웃었다. 당신 같이 잘 자란 사람은 모를 거야.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도 당신은 첫 희생양이 되었어. 나의 저주에 걸맞은. 그렇게 말하며 여인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으로 칼날을 집어넣었다.

 

평생 혼자이게 될 거야.’

 

여인의 마지막 입술은 영문 모를 말을 내뱉었다. 평생 혼자라니. 지금도 늘 혼자인 것을.

 

그러나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 것은, 아주 먼 세월이 지나서야. 6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

 

 

 

형이라 하기도 뭐한걸.”

 

하얀 은발의 노신사가 그렇게 말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말쑥한 모습이다. 인간의 나이가 든다라는 말은 이런 것을 의미하는 걸지도 몰랐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 못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

 

형은 그대로야.”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의 옆에는 그가 가장 전에 아끼고 살던 하얀 칼집의 긴 검이 의자에 비스듬하게 걸쳐 있었다. 이미 그 앞의 형은 죽은 지 오래. 그러나 나는 얼굴에 주름 한 점, 나이를 비켜가듯 그렇게 살았다. 가족의 마지막은 내 동생, 이글이 마지막이었다. 큰형이 이 장면을 봤어야 했는데. 큰 형은 끝까지 형이 늙을 거라고. 우리랑 같이 갈 거라고 믿었거든. 이글은 그렇게 말하며 주름진 손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몸을 기대었다. 손잡이에 올려놓은 손 위론 세월의 흐름이 가득했다. 망나니 같다고 소문난 동생은 죽었다고 소문난 벨져 홀든이란 자신의 형을 대신해, 다이무스 홀든이 죽자마자 대를 이었다. 큰 형이 연인이 없다는 사실은 그저 그 누구에게도 어색하거나, 이상한 사실은 아니었다. 고지식한 다이무스 홀든 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소문은 이미 만연했으니. 나는 처음으로 주름진 동생의 손을 잡아 보았다.

 

.”

 

“....그래.”

 

좋겠네, . 내가 다음 생에선, 모습이 달라져도. 형은 그대로이니 말이야. 내가 형을 찾기 쉽겠어.”

 

그때가 되면 우리 셋 모두. 다시 만나서 예전처럼 놀 수 있겠지? 그렇지 형? 그렇게 말하는 동생이 수면인 듯, 아니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꿈인 듯. 눈을 천천히 감는 것에 나는, 그래. 하고 대답해 주며 그 손을 한 번 더 쥐어 잡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이글 홀든의 장례식은 소박하게 이루어 졌다. 홀든가의 고용인들은 자신들이 섬길 마지막 주인의 모습을 보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글 홀든의 묘지는, 정확하게 다이무스 홀든의 옆이었고, 다이무스의 묘비를 중심으로 그 옆에는 당연하듯, 벨져의 묏자리가 있었으나 벨져는 그 묏자리를 다른 서민에게 양보했다. 자신이 그곳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알기에.

 

 

 

*

 

 

 

벨져는 감았던 눈을 떴다. 잠깐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고 착각 할 뻔 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느라 새벽빛을 받아 가며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와 머리 빛이 너무나 밝게 빛나서. 벨져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얼핏 웃었다.

 

인연은 만들지 않는다.”

 

…….기구한 인생이군요.”

 

그래. 정확해.”

 

아주 기구하지. 그러니 나는 내 죽을 자리를 찾고 있는 걸지도 몰라. 벨져는 그렇게 말하며 그에게서 벗어나 해가 떠오르는 새벽을 바라보기위해 창틀에 걸터앉았다. 뱀파이어는, 기본적으로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지독히 고통이란 것을 느낄 때를 제외하곤. 그러나 오늘은 수면이란 것을 취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이 예전에 인간이었던 그 삶을. 잠시나마 느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 벨져는 눈을 감았다. 꿈을 꿔 볼까. 어떤 꿈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벨져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내일이 없는 꿈을 꿔보자.

 

오늘이 마지막인 꿈을.

 

그렇게 자신의 몸이 변한 이후로, 벨져는 단 잠에 빠져 들었다. 그 모습을 루드빅이 지켜보는 것도 모른 체.

 

 

*

 

 

 

벨져의 단 잠을 깨운 것은 처음 느껴보는 포근한 음식 내음이었다. 여러 가지 향수 향기가 뒤 섞인. 무거운 눈을 떠 보자, 천천히 닫혀 있던 것만 같은 귀도 열리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은 별이 뜨기 시작하는 밤이었고, 자신의 몸 위에는 루드빅, 그 자가 평소 걸치고 다니던 재킷이 덮어져 있었다. 뭔가를 요리 하는 듯, 분주하게 덜그럭 거리는 부엌의 소리에 어느새 소파 위에 누워져 있던 자신의 몸을 일으켜 향기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뱀파이어가 허기짐을 느끼는 것은 음식에 느끼는 것이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 그것도, 피가 흐르는 것들. 이왕이면 인간. 인기척을 숨겨도 당연하다는 듯 뒤를 돌아서 자신의 펜에 담겨진 요리를 접시 위에 담아내는 그를 보고 그의 바로 뒤쪽, 카운터 식탁에 앉아 접시 위에 놓인 파스타를 바라보았다. 갓 해서 김이 나는 파스타.

 

먹을 겁니까?”

 

“.........”

 

피만 먹는 줄 알았는데.”

 

당신 건 안 만들었거든요. 다시 만들어야겠군요. 먼저 먹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파스타 면을 삶기 위해 큰 냄비에 다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먼저 먹겠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것 마냥 행동하며 요리를 시작하는 모양새를 보니 아주 자신의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당신은 그 파스타를 먹게 될 거야.’ 라고 말하는 듯 한 남자의 단정한 뒷모습을 보다가 포크를 집어 들었다. 면을 조금 헤집어 둘둘 말아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입에 넣었다. 잘 모르겠다. 맛있는 맛인가? 피의 맛에 익숙해 졌으나, 이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맛있는지 물어보는 듯 한 눈에 나는 그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몇 백 년만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뱀파이어이기 전에, 나는 너무나 작고 초라했던. 인간이었으니까.

 

잠시간 잊고 있던 인간사이의 정이라는 것을 느끼는 인간이었으니까.

 

 

 

 

*

 

 

비좁습니다.”

 

침대위에서만 잤다.”

 

허이구. 두 번 바닥에서 재웠다간 난리 났겠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내려가서 자면 될 거 아닌가. 여기 이 침대 주인은 나라서요. 그렇게 별 영양가 없는 다툼이 잠시 있었으나, 이내 창문 너머로 비추는 달빛이 침대 위를 이불처럼 감싸는 모양새를 잠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좁은 침대 위에서 남자 둘이 자기엔 너무나 협소하고, 좁았지만. 좁은 만큼 서로의 온기를. 정확하게는 인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으니까.

 

나쁘지 않았다.”

 

뭐가요.”

 

네 요리솜씨.”

 

“.........”

 

내일은,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 해보시죠. 일단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퍽 신경 쓰는 듯, 쓰지 않는 듯 말하는 루드빅의 목소리에 벨져는 픽 웃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던 벨져는 이내 벽과 벨져 사이의 틈에 낑겨 잠을 청하던 루드빅이 몸을 자신의 쪽으로 돌리는 것에 눈을 마주 했다. 묘한 시선이 오갔다. 그래, 저 입술에서 나는 피 맛은 조금 달랐다. 향기로웠고, 자꾸 탐하고 싶었던 그런 맛. 눈을 가볍게 내리 깔자, 난생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이란 감정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일까. 그러나 나의 눈썹이 떨리는 것을 본 그가 입을 맞추어 왔다. 잠에 들기 전 양치한 민트 향이 나는 것에 숨을 들이켰다.

 

당신 입술은 참 차가워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네 입술은 참 뜨거워.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내듯 말을 덧붙였다.

 

우리처럼 안 어울리는 조합은 없을 거야. 그렇지, 헌터?

 

 

그리고 그는 그 말을 회피하듯 눈을 감아버렸다. 태양이 잠드는 시간이 왔다.

*

 

 

[ 다시 목덜미의 저주흔적이 마을을 습격? ]

 

아침 조간신문에 실린 뉴스에는 자신이 의뢰를 맡았던. 그리고 여전히 다음 의뢰이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있는 마을의 이름이 실려 기사를 다루었다. 흑백 사진 속의 여인은 목덜미에 두 개의 송곳니 자국을 들어낸 체 하얀 흰자위를 드러내며 죽어 있었고, 찍은 사람은 그저 최대한 목덜미만 나오게 찍으려 했으나, 목과 가장 가까운 부위가 얼굴인 것을. 차마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시체의 얼굴이 나오게 해 버렸다. 침대에서 그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 루드빅은 자신이 보고 있던 신문을 서둘러 다음 장으로 넘겨 버렸다.

 

……. 아침은 리조또가 좋겠어.”

 

……. 아침은 토스트 정도로 간단하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몸은 가벼운 편이 좋거든요.”

 

난 운동량이 많아서 괜찮아.”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자연스럽게 바뀌는 옷은 여전히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늘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이 멈칫거리며 올라가다가 다시 힘없이 늘어지는 장면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백 년이 지나도 습관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커피를 찾는 듯 부엌을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입을 열려는 순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이봐!!! 헌터, 헌터!!!!”

 

귀 안 먹었습니다.”

 

이게 뭔가!!! 약속이 다르지 않나!!! 제대로 처리 해 준다고 했잖아!!! 여전히 밖에서 그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저는 의뢰를 제대로 실행했습니다. 실제로 며칠간은 흡혈 활동은 전혀 없었잖습니까.”

 

그래. 분명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야! 다시 또 일이 터졌다고. 그 괴물을 어서 죽여줘. 보수는 더 얹어주지. 한시라도 이 마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네! 이러다가 유령 도시로 찍혀도 할 말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말만 내뱉은 시장은 씩씩 거리며 문 밖으로 나섰다. 거칠게 닫히는 문에 루드빅은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부엌을 쳐다보았다. 빈 커피 잔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벨져는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니야.”

 

“.........”

난 아니야. 야밤에 동물의 피는 섭취했어.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인간의 피는 섭취하지 않아.”

 

살아가는 데는 동물의 피 정도면 충분하니까. 루드빅은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믿어야 했다. 헌터의 본능과, 자신의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가차 없이 죽였을 건데. 흔히 말하는 홀린 것이란 게 이런 것일까. 저 말이 거짓이라도 사실로 만들고 싶은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벨져가 말했던, 어울리지 않는 조합. 그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서로 죽이거나. 쫓거나 쫓기거나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그런 사이니까.

 

[범인은 은발에]

 

벨져의 은발에 루드빅은 시선을 주었다. 저 머리카락은 자신이 침대에서 몸을 들썩일 때 마다 같이 흔들렸던 머리카락이고.

 

[붉은 입술에]

 

저 입술은, 달콤한 말 대신 소리 없는 입맞춤을 하는 입술이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졌으며]

 

저 입 안쪽에 가끔 치열을 더듬을 때 스쳐 지나가듯 느껴지는 뾰족한 송곳니를 기억한다.

 

[치명적이게 아름답게 생겼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있었다.]

 

벨져. 당신이 아니길 바라. 루드빅은 그렇게 말없이 벨져의 시선을 마주했다. 두 사람은 그 날을 기점으로 말 수가 부쩍 줄어들어 버렸다. 마치, 침묵이 오히려 그들을 붙잡는 끈이 된 것 마냥.

 

 

 

*

 

 

자연스럽게 커튼을 닫았다. 최근 들어 늘어난 외부의 시선이 그리 반갑지는 않다. 벨져, 그도 느낀 것인지 집안에는 불도 켜지 않고 그저 어둠 속을 배회하는 나비 마냥 벽에 붙어 기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내 창문의 커튼을 다 닫고 나서야 침대에 누워 커튼으로 뒤덮여 적막한 창문을 바라보는 벨져의 뒤로 다가가 루드빅은 말없이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부쩍 푸석해지는 머리카락. 그날 이후로 결벽증 마냥 피를 거부하는 그 덕분에 억지로 칼로 손바닥을 베어 입에 닿게 하자 그제야 목을 축이는 것에 미간을 찌푸렸다. 죽이려는 자는 살리고, 살려는 자는 죽어간다. 루드빅은 느릿하게 그의 옆에 누워 벨져의 허리를 끌어안아 보았다. 한 줌, 그렇게 표현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싶을 정도로 가는 허리. 뱀파이어의 차가운 온기가 피부로 스며드는 것 같아 루드빅은 눈을 감았다.

 

피가 필요해.”

 

“........”

 

루드빅은 말없이 팔을 걷어 올렸다. 목 폴라티에 감춰진 살이 들어나고, 잠시 뒤 올 따끔함에 대비하듯 근육이 긴장하기 시작했으나 벨져는 뒤돌아보지 않고 다시 말했다. ‘피가 필요해.’ 라고.

 

여기 있잖습니까.”

 

그거론 안 돼. 적어도 많이 섭취해야 해.”

 

무언가의 명이 다 할 정도로 말이야. 낮게 울리는 듯 한 목소리에 루드빅은 자신이 구해 오겠다며 침대의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바닥으로 발 하나를 디뎠으나, 벨져가 일어나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말없이 일어난 벨져는 픽 웃으며 읊조렸다. 헌터가 갑자기 피를 찾아 나선다니. 아주 대놓고 살인마가 자신의 집에 있다고 소문을 내는 것과 다름없군. 그렇게 말하며 벨져는 눈을 감았다 떴다. 피를 최근에 많이 섭취하지 못해 변신하는 것은 불가능. 잠시 밖을 나갔다 온다면. 밖에서 동물의 피라도 제대로 섭취하면 변신 정도는 해서 다시 이 집안에 들어 올 수 있겠지. 벨져는 창문의 커튼을 열어 젖혔다. 마치 환영이라도 하는 듯, 달빛이 쏟아져 벨져의 몸을 감싸는 장면을 보고 루드빅이 급하게 손목을 잡아 붙들었다.

 

안됩니다. 이 근방엔 이미 감시 하는 사람이 잔뜩 깔려 있어요.”

 

잘 됐군.”

 

차라리 나를 쫓는 게 편해. 짐 덩이 하나를 달고 다니자니 안 그래도 귀찮았는데 말이야. 무심하게 감기는 속눈썹에 루드빅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진심이 아니란 것은 뿌리치지 못하는 손을 봐서라도 알 수 있었기에. 그러나 손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빠졌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가르는 것 마냥. 움켜쥔 손에는 미련과 아쉬움만 쥐어졌을 뿐, 다른 것은 잡히지 않았다.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지 않았나.”

 

이 지겨운 놀이 말이야. 나도 슬슬 질리던 참이었어. 그렇게 말하는 모진 입을 루드빅은 그저 바라보았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지금 나가면 죽을 겁니다. 정말로.

 

그리고 벨져는 대답했다.

 

그거 참 좋은 일이네. 드디어 내가 죽을 수 있다니 말이야. 마지막은 네 얼굴 정도 기억하는 것으로 끝내서 다행이군.

 

*

 

 

개와 늑대의 시간이 도래했다. 쫓기는 자와 그를 쫓는 자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찾는 자. 벨져는 이를 악물고 지붕 위를 도약했다. 제법 실력가는 헌터들. 노련한 몸놀림으로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어 던지는 행위에 벨져는 이미 어깨에 맞은 검을 뽑아 다시 뒤로 던졌다. 가벼운 소리와 함께 날아간 단도는 뒤 따라 오던 헌터의 이마를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갔으나, 그들은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더욱 박차를 가해 쫓아올 뿐이었다. 평소엔 그저 자신의 일부라 생각했던 머리카락이 악착같이 달려오는 헌터에 의해 잡아 당겨질 듯 말 듯 한 거리로 좁혀지는 것에 벨져가 다시금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머리가 순식간에 붙잡혔다.

 

!”

 

잡았-!”

 

빠르게 손톱을 길게 늘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차 없이 잘라 내고 허망하게 머리카락을 쥔 헌터의 복부에 손을 박아 넣었다. 배를 통과한 손을 빼내자 달콤한 혈액의 향이 밀려오기 시작했으나, 만찬을 즐기기엔 방해하는 손님이 너무나도 많았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제대로 짧게 정돈된 머리카락으로 변하는 것에 만족스럽게 손에 묻은 피를 두어 번 핥아 보곤 손바닥을 털어 냈다. 더럽게 맛없네.

 

……. 지원 병력을 더 불러!”

 

!”

 

벨져는 파란 눈을 곱게 휘었다. 지금도 빠듯한데, 더는 무리니까. 빠르게 자리에서 도약해 지원을 부르려는 신참내기 헌터의 머리통을 쥐어 으깨려는 순간 자신의 옆구리로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다가오는 것에 빠르게 몸을 돌려 피했다. 어느새 자신의 주변을 둥글게 에워싼 헌터들을 보고 벨져는, 마지막으로 그 노란 머리 녀석의 피를 미리 잔뜩 맛볼걸 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밤은 아직 길고, 누구 하나가 죽을 때 까지 끝나지 않을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정각의 시계탑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디 있습니까.”

 

애초에 당신. 살인마를 자신의 집에 거주하게 해? 당신이 그러고도 헌터인가?”

 

의뢰비는 다시 돌려 받겠-. 하고 촌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이 주었던 돈 가방이 책상위에 올려지고 이내 자물쇠를 다 풀어 헤친 덕분에 쏟아지는 돈뭉치들에 촌장은 어안이 벙벙해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루드빅은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느릿하게 촌장의 옷깃 멱살을 잡고 끌어 당겼다. 가늘게 접힌 눈은 노란 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옅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입김은 겨울의 시린 한기를 담고 있었다. 어디. 있지요? 촌장은 그 질문에 모르쇠로 대답했고, 그대로 촌장의 목은 강한 신음소리와 함께 뒤로 비틀어졌다.

 

 

*

 

 

 

벨져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미하게 남겨진 전투의 흔적들이 길게 이어져 달려 나가고 있었으니까. 바닥에 박힌 검을 뽑아 보곤 서둘러 검이 박힌 방향 쪽으로 달려 나갔다. 한참을 달려가니 루드빅의 시야에 잡힌 은빛의 무언가의 실타래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에 루드빅은 걸음걸이를 천천히 하기 시작했다. 발아래 밟히는 연한 가닥가닥의 머리카락. 그대로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리자 저 너머 희미한 피 향기에 루드빅은 발걸음을 다시금 때었다. 아니, 달렸다. 무언가의 절박함을 해결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이 피가 그 사람 피는 아니겠지. 자신이 헌터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생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 누군가를 살인하는 것에 있어서 필요치 않는 감각들이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디딜수록 그 감각이 선명해져, 결국은 골목 어귀에 쓰레기 더미에 몸을 눕힌 벨져의 모습을 보고서야 루드빅은 숨을 들이 쉬었다. 희미한 푸른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읽혀지지 않았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그저 잠시 자신을 향했다가 다시 감길 뿐이었다. 서둘러 벨져의 입에 아까 주웠던 칼로 팔을 베어 피를 흘려 입술에 닿게 하자 이를 외면하는 행동에 루드빅은 억지로 벨져의 턱을 붙잡았다.

 

마셔. 아니면 내 팔 한쪽이라도 줄까.”

 

“............”

 

지독하군요.”

 

팔을 잘려본 적은 없는데. 정말로 팔이라도 그을 듯 검을 들어올리는 행동에 벨져는 서둘러 검을 쥔 손을 붙잡았다. 피가 줄줄 흐르는 팔은 그의 팔이 아직 온전히 붙어 있는 것을 증명했다. 이미 힘은 빠질 대로 다 빠졌고, 그들이 사용한 특수한 가루가 온 몸에 붙어 반짝거리며 힘을 앗아가는 것에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벨져는 흐려지는 눈가로 그저 혈 향에 의존해 입술을 대었다. 달다. 안정된 느낌의 단 맛. 아까 그놈의 피와는 전혀 다르다. 그제야 허기가 몰리기 시작해 허겁지겁 달려들어 피를 빨아 올렸다. 순식간에 팔로 몰리는 피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건지 미약한 신음 소리가 나는 것에 벨져는 놀라 입을 땠지만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파고들며 자신의 팔을 다시 물리는 행동에 머뭇거리며 다시금 피를 조금씩 삼켜내기 시작했다.

 

 

내가 죽어야 제일 편한 결말이야.”

 

아니. 내가 살립니다.”

 

당신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루드빅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팔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지도 않고 다시 코트를 걸쳤다. 검은 가죽장갑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자, 가죽 특유의 움켜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별걸 다 신경 쓰는군. 넌 원래 나를 죽여야 하는 입장이야.”

 

압니다.”

 

루드빅은 그렇게 말하며 벨져에게 손을 내밀었다. 쓰레기 더미에 걸쳐 누워있던 벨져는 말없이 그 손을 잡았고 힘 있게 벨져를 끌어당긴 루드빅은 조용히 속삭였다.

 

그저 당신이 없다는 선택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

 

 

우두둑 소리를 내며 꺾인 헌터의 목을 무심히 바라보며 루드빅이 손을 놓자 그대로 손에서 떨어진 머리 덕분에 힘없이 뒤로 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벨져는 눈을 찌푸렸다. 네 능력을 사용하면 그렇게 죽이지 않아도 되지 않나. 그 말에 루드빅은 손바닥을 털어 내며 빛은 너무 밝아서 가끔 쓸데없는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요. 기본적으로 저는 몸을 움직이는 타입이라.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쓸어 넘겨 올리곤 주변을 돌아보았다. 잔뜩 죽은 헌터들. 이중에선 꽤나 유명한 자도 있었고, 자신과 제법 아는 사이로 지내고 싶어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죽이는 것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저 방해가 되는 것은 죽이는 것이 당연하니까.

 

더 이상 이 마을엔 있을 순 없겠군요.”

 

“.........”

 

다른 곳으로 이동하죠.”

 

루드빅은 그렇게 말하며 달이 떠오른 침묵의 도시의 보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침묵의 도시. 벨져는 그런 도시를 뒤를 돌아보다가 이내 루드빅의 뒤를 쫓았다.

 

후회 할 거야.

 

뭐가 말입니까.

 

너랑 나는 수명 자체가 달라.

 

압니다.

 

우리는 영원할 수 없어.

 

그것도 압니다.

 

그럼 왜?

 

헌터는 영원이란 것도, 평생이란 것도.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그저 사치일 뿐이죠.

 

...........

 

평생을 바라진 않겠습니다. 옆에 있는 동안만큼은. 사치를 누리게 해 주세요.

영원이란 게 있을지도, 평생이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게.

 

이번 의뢰는 당신의 목숨입니다. 제가 의뢰주죠. 당신의 목숨을 원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까지. 그 정도는 간단하지요?




- 루드 벨져  뱀파이어 AU 입니다.


- 능력 변환은 벨져만 있고, 벨져는 무기를 다루진 않습니다. 시점은 벨져가 태어난지는 꽤 되었고, 그 이후 루드빅이 태어난 시점으로 생각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 수위가 있습니다. (언어플 주의)


- 본 글의 소유권은 @ffsdasa (에코) 님에게 있으며, 해당 글은 에코님의 생일 선물로 쓰여진 글 입니다. 무단 배포를 금지합니다.


- 1부와 2부로 나뉘어 집니다. 2부는 설 명절 이후 올라올 예정입니다.



사랑이 너무 가냘프다고?

 

너무 거칠고, 잔인하고, 사나우면서도 가시처럼 찌르는 게 사랑이네.

 

<로미오와 줄리엣> 중 로미오-

 

 

 

사냥개가 사냥을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냥개는 호랑이처럼, 질 좋은 고기가 눈앞에 있으면 달려드는. 그런 것은 사냥개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사냥개는 그저, 사냥감이 지치고. 지치고. 다시 지칠 때 까지 몰아세우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사냥개이다. 이미 궁지에 몰려 자신을 바라보고 벌벌 떠는 사내의 표정을 보고 아무 표정 없이 그를 쳐다보자,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떠는 모양을 보곤 볼을 톡톡 두드렸다.

 

계속 도망쳐 보십시오. 이렇게 쉽게 잡히면 재미가 없는데.”

 

히이이익! ....제발, 살려만 주-!”

 

움찔거리며 자신의 다리를 붙잡는 사내의 행동에 얼굴을 찌푸렸다. 새로 산 구두에 흙먼지가 뒤덮인 모양을 보니 매우 불편해져, 사내를 걷어 차 버렸다. 벽에 몸을 부딪혀 동그랗게 몸을 말며 신음을 내는 것을 보고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 찔러 두었던 손을 빼내 웃었다.

 

안심하진 마세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튕겨내는 손가락에 빛이 골목에서 번쩍였지만, 저마다 바쁜 하루를 지내왔던 사람들은 그러한 불빛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골목에서는 비명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그저 검게 탄 듯 축 처진 형체 모를 무언가가 연기를 내며 쓰러져 있었다는 뉴스가 신문에 크게 실렸을 뿐 이었다.

 

 

 

*

 

 

코드명은 ALBEDO. 그러나 그는 항상 루드비히 와일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지, 코드명으론 절대 불리지 않는 사내였다. 무릇, 헌터라는 것은 마치 조용히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독보적이었다.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았으며, 표적에게 다가가는 것 또한 자신의 기척을 다 알리며 다가갔으니. 그에게 살아서잡힌 의뢰물은 두 번 다신 같은 일을 저지르지 못했다. 죽이지 못해 아쉽다는 눈으로 자신들을 쳐다본 노란 눈동자에 질렸기 때문이리라. 서류를 한참 훑어보던 시장은 자신의 단안경을 고쳐 썼다.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창문 밖을 쳐다보는 사내.

 

정말 헌터 맞소?”

 

못 믿겠다면 가면 그만입니다, . 그럼 이만.”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말이 어지간히 심기를 거슬리게 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내의 행동에 시장은 서둘러 벌떡 일어서 아, 아니네! 기다려 보게! 하고 다급하게 말로 그를 붙잡았다. 그 말에 우뚝 멈춰 서 뒤를 돌아보고 마주친 사내의, 루드비히의 금빛 눈동자에 시장은 침을 삼켰다. 자신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은 더 이상의 비극을 불러일으키다간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마을에 대한 악평과 공포가 퍼질 것이 분명했다. 더 이상의 죽음은 불가했다.

 

믿고 맡기겠네. 단 확실하게 처리해 주게.”

 

좋습니다. 보수는 제대로 준비해야 할 겁니다.”

 

루드비히는 픽 웃으며 자신의 신원이 적힌 종이를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시장은 노랗게 질린 얼굴로 루드비히를 보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세르비아에 일어난 작은 피의 파문은 곧 전 마을에 퍼지기 시작했다. 첫 시신, 두 번째 시신이 발견 될 때 까지도 공통적인 피해자의 특징이라곤 여성이라는 특징. 그것도 젊은 여성이란 특징 밖에 발견 되지 않았지만, 곧이어 하나같이 여인들의 목덜미에 붉게 속살이 보일정도로 파인 두 개의 구멍이 모두 존재 한다는 것을 눈치 챘다.

 

어쩌면, 뱀 같은 동물의 습격일수도 있네.”

 

“....... 동물이 같은 장소를 지정해서 문다? 참 기특한 생각이군요.”

 

거기까지가 당신들의 한계겠지만. 루드빅의 날선 말에도 시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격자는 어차피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으니까. 루드빅은 사진 속에 목에서 두 줄기의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의 목덜미를 주시했다. 인간의 몸은 절반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이 죽여 봤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확실한지는 알고 있다. 빛 입자를 가열해서 열을 발생해 고온으로 사람의 몸을 타 녹여 버리는 것이 제 능력이니. 여인의 몸들은 하나같이 핏기가 없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찍은 듯 한 사진에서도 핏기가 없어 보이는, 밀랍인형 같은 것을 보아하니 피를 어지간히도 빨아댄 것 같은데.

 

마을에 어린 처자라고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만 남았네.”

 

잘 됐군요. 다음 목표가 어느 정도 추려지니.”

 

혼자선 잘 모르겠으니. 총을 든 군인들을 각 여자들이 머문 처소에 배치하고, 범인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걸로 하죠. 허공에 총을 쏘던지. 그걸 신호로 하면 되겠군요. 루드빅은 사진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장은 루드빅이 내민 제안에 화색을 하며 꼭 그리 하겠노라 약조를 거듭 하고 옅게 웃었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해결 될 것 같다며.

 

 

*

 

 

아마 그 처자는 별로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없네. 몸이 병약해 거의 침대에 누워있다 시피 하고. 늙은 주치의가 종종 방문해 진찰을 하곤 있지만, 좀처럼 원인을 알 수 없지.’

 

어렴풋이 떠오르는 시장의 말에도 루드빅은 개의치 않고 여인의 집 문 앞에 팔짱을 기대고 섰다. 사냥에는 허점이 없어야 한다. 잠시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으니. ‘아마라는 것은 죽음 앞에선 아무 소용없는 것이니까. 어슴푸레 하게 떠오른 달이 떠오른 지가 한참이 지나고, 모두가 한둘씩 잠을 청할 때 즈음의 시간이 되자 골목 어귀에서 인영 하나가 큰 가방을 가지고 걸어오는 것에 루드빅은 시선을 주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구두소리에 몸을 벽에서 때어 그쪽을 삐딱하게 쳐다보자 척 봐도 인심 좋다고 사람들이 말할 정도의 얼굴을 가진 노인이 자신이 썼던 모자를 벗고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에 혀를 찼다.

 

마리아 양의 주치의입니다만......”

 

. .”

 

오늘은 왕진 날이라서... 그런데 누구십니까?”

 

공손하게 물어보는 행동에 루드빅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마저 볼일 보시죠. 하고 고개를 돌렸다. 관심 있는 것은 노인이 아니니까. 노인이 짐짓 껄껄 거리며 웃더니 이내 모자를 다시 바르게 쓰고 고개를 숙여 보이곤 집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러자 몸이 안 좋아 보이는 여인 한명이 문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이는 것과, 옅은 미소로 노인을 반기는 것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노인이 집 안에 들어가고, 문이 닫히기 전 까진.

 

늙은 주치의

 

늙었다라. 노인답지 않게 곧고 직선의 발걸음. 그리고 노인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이는. 모자를 집어 내렸던 손.

 

이런.”

 

급하게 문을 발로 차고 여는 순간 이미 혼절한 여인이 서 있었다.

 

저런, 이제 눈치 챘나?”

 

잔뜩 입술에 붉은 핏방울이 머금어져 있었고, 입가를 타고 흐르는 검붉은 선혈에 시선을 주기도 잠시. 창백한 피부. 그것보다 더 시선을 잡는 건.

 

평소에 보던 놈들과는 다르군.”

 

은빛으로 물들인 것 같은 노인의 짧은 머리스타일에서 순식간에 긴 머리로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에 루드빅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온 사냥감이 자신의 입술에 피비린내 나는 입김을 후 불 때 까지.

 

당신이야말로. 피 좀 닦지 그러십니까. 식사 매너가 엉망인 것 같습니다만.”

 

. 이번 피는 맛이 없었거든. 그렇지만 안전했지.”

 

비릿하게 웃어 보이며 입술을 핥는 남자의 모습에 루드빅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남자의 혀를 따라 언 듯 보였다 사라진 양 송곳니를. 구멍의 원인은 알아차렸다. 이제 남은 건.

 

미안하지만, 마지막 식사가 훌륭하지 못해서 아쉽군요.”

 

아쉬울 리가. 마지막 식사는 정해졌다.”

 

바로 네놈이지. 말 마치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맨 손으로 달려드는 남자의 행동에 루드빅은 반사적으로 빠르게 몸을 뒤로 빼냈다. 이것 봐라, 하는 눈으로 쳐다본 사내의 행동에 루드빅은 입 꼬리를 올렸다. 여태껏 시시했던 사냥감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그래, 최소한 자신과 견주어 보아도 절대 밀리지 않을. 그런 사냥감.

 

그거 참 아쉽군요. 이번 의뢰는.”

 

빠르게 도약해 그대로 사내의 목을 움켜쥐곤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죽음입니다.”

 

 

*

 

이거 놔!”

 

싫은데요.”

 

젠장. 이내 힘없이 새장을 쥐고 있던 날개를 풀어버리곤 엎드려 누워 버렸다. 새장 안에 갇힌 박쥐는 인간의 말을 구사 할 줄 알았다. 빛을 싫어 한 다라. 달빛 정도의 미미한 빛은 괜찮은가 보지만, 능력을 쓴 손이 스치자마자 타들어 갔다가 금세 다시 돌아오는 그의 살에 웃었다. , 그래. 약점을 알아낸 사냥감은 독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니까. 빠른 속도로 몰아붙이자 처음엔 기세등등하던 것과는 달리 망토로 몸을 감싸곤, 서둘러 한계점에 닿기 전에 박쥐로 변하는걸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저런 식으로 변신하는 거군. 손가락으로 박쥐의 엉덩이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박쥐의 비명소리와 함께 추락하는 것을 보고 느릿하게 다가갔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박쥐를 손으로 집어 올리니 발버둥 치며 날카로운 송곳니로 루드빅의 팔을 물려는 것에 혀를 찼다. 기어이 주머니에 있던, 오후의 식사 영수증을 입에 물리고 나니 얌전해 지는 것에 속삭였다.

 

이번엔 엉덩이였지만, 다음엔 머립니다.’

 

그 말에 순식간에 잠잠해 지는 것이 의아했지만. 루드빅은 이번 의뢰는 성공했다며, 간만에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거리를 나섰다. 우선은 새장이 필요했으니. 오늘 만큼은 자신에게 어떤 암살 의뢰가 와도 기꺼이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새장에 갇힌 박쥐는 몸으로 새장을 박찼지만, 그 작은 몸뚱이가 도리어 튕겨 나올 뿐, 별달리 방도가 없었는지 그날 이후로 구석에서 주는 먹이를 받아먹지도 않고 그저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죽고 싶은 겁니까?”

 

박쥐 처리는 질색인데. 그렇게 말을 하니 희미하게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는 박쥐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얌전한 사냥감만큼 재미 없는 건 없다. 영 맥을 못 추리는 그 행동에 새장에서 그를 꺼내 보았지만 미동 없이 축 늘어져 움직이질 못하는 것이 어딘가 정말 죽을 것만 같아서. 급하게 손가락을 날카로운 송곳니에 문질렀다. 바늘처럼 따끔한 느낌과 함께 피 한 방울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 그 입안으로 들어가자 눈을 천천히 뜨는 그 행동에 혀를 찼다. 한 방울이라도 더 먹겠다는 건지,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연신 작은 혀로 핥아 올리는 것에 손가락을 빼 내자 왜, 라는 의문의 시선이 따라 붙는다.

 

뭐 좋으라고 사냥감이 배불리 먹도록 합니까.”

 

나쁜 새끼. 그냥 죽여.”

 

아깐 잘만 변신하더니. 이번에도 그렇게 도망치시던가요.”

 

“.............”

 

박쥐는 다시 루드빅의 손 위에서 몸을 돌렸다. 작게 들리는, ‘그러고 싶지만. 힘을 다 써버렸어.’ 하는 말은 어딘가 포기를 한 사람의 목소리 같아서.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의뢰인의 의뢰 내용은 그저 이 마을의 살인 사건을 막아 달라 한 것일 뿐. 당신을 죽이라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당신 생명줄은 내가 잡고 있는 것 같은데....... 내 피를 나눠 주죠. 대신 이쪽의 일을 도와야겠습니다.”

 

꽤 유용한 능력이니까요. 그렇게 말을 하자 박쥐는 얼굴만 조금 돌려 루드빅을 바라보았다. 마치 죽은 것 같은 차가운 박쥐의 몸뚱이는 쉽게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루드빅의 어깨 위에 앉았고,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그의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수락의 뜻 이었다.

 

 

..

 

잠시만.”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순식간에 피가 빨려 들어가 어지러운 기분이 느껴지는 것에 박쥐를 밀어 내려 하니 어느새 인간으로 변한 그가 목덜미에서 입을 때곤 입맛을 다시며 가쁜 숨을 내 쉬었다. 나체의 그 몸뚱이가 달빛을 받아 빛나는 것에 루드빅은 목덜미를 손으로 누르곤 그를 훑어보았다. 피가 모자라 몸을 돌려낼 힘이 없었던 거로군.

 

. 더 내놔.”

 

내 피 입니다. 당신 피가 아니고.”

 

꽤 많이 빨아 들인 건지, 머리가 잠시 멍해질 정도로 시야가 흐려지는 틈을 타 은빛의 사내가 루드빅의 몸을 밀어 버렸다. 가벼운 손짓 하나에 비틀 거리며 넘어질 정도이니, 시야가 흐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뒷걸음질을 치며 소파에 누워 쓰러지니 그 위로 묵직한 무게가 올려진다. 익숙한 듯,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려 루드빅의 것을 꺼내 손으로 두어 번 쥐어 크기를 가늠하는 행동에 루드빅은 잃었던 정신이 번쩍 돌아올 정도로 눈을 내리떴다. 차가운 손이 제 것을 능숙하게 만지고, 자신의 둔부를 부벼 오는 것이.

 

그럼, 이것이라도 내놔라.”

 

그리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는 것이.

 

피만큼 부족한 게 있거든.”

 

아니, 사실은 꽤 기분 좋다는 것이, 그의 정신을 깨워내기 시작했다.

 

 

 

*

 

 

..! 이제 그만, 양기는 이정도면..!”

 

피만큼 부족하다면서요.”

 

정액으로 부족한 만큼 채워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며 안쪽을 잔뜩 휘젓고 있던 제 것을 느릿하게 꺼내 보았다. 자신이 이미 안쪽에 잔뜩 질러놓은 제 정액들이 자신의 것과 뒤엉켜, 입구 근처에 미끈거리듯 투영되는 것이 절경이었다. 이미 한계치 까지 벌어진 그의 입구 부분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둔부를 양 손으로 벌리자, 기운찬 발길질이 한번 이어진다.

 

사냥감 치곤, 정말 말 많고 귀찮은-.”

 

귀두만 안쪽에 머금고 있던 그의 것을 다시 뿌리 끝까지 삽입해 강하게 박아대니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려는 것에 양 팔을 붙잡고 말고삐 당기는 것 마냥 당겨 허리를 쳐올렸다. 처음에는 기세 좋게 자신의 위에 올라타더니, 잔뜩 흥분해 허리를 들썩이다 일어나는 것이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몸을 일으켜 그대로 사내의 몸을 자신이 누워있던 소파에 개처럼 엎드리게 하곤 그대로 다시 삽입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공중에 흐트러지며 간간히 어슴푸레하게 뜬 달빛을 반사하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것은 없었다. 상처 하나 없는 등골이 휘며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제대로 조이십쇼. 그래야 원하는걸 얻지 않겠습니까.”

 

이미, 잔뜩-! ,,, !!”

 

뱀파이어는 잘 모르겠군요.”

 

남성체도 임신이 가능한지. 근육으로 뒤덮였지만, 그런대로 부드러운 사내의 배를 꾹 누르자 그의 내부를 들쑤시는 자신의 것이 느껴져 그 뻐근함에 치골을 엉덩이에 문질렀다. 내벽의 주름이 촘촘하게 감싸 안는 것과, 입구가 조이는 것이 기분 좋아서. 실없이 농담 투로 던진 말에 그는 예리한 눈을 빛내며, 그런 거 가능할 리가 없다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다시금 발길질로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그의 행동에 루드빅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교육이 필요하겠군요.”

 

그리고 천천히 그의 양 손목을 근처에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여있던 자신의 셔츠로 묶어 버리곤 무릎 뒤와 겨드랑이 뒤쪽으로 손을 넣어 안아 올렸다. 바동거리며 어떻게 해서든 품에서 벗어나겠다는 강경한 몸놀림에 침대에 던지듯 올려놓곤 침대 머리맡 기둥에 손목을 다시 묶어 버렸다.

 

미친놈.”

 

 

. 그 정도는 되야.”

 

사냥개 호칭에 어울리진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루드빅은 근처 옷장에 있던 가죽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워 넣으며 웃었다.

 

 

*

 

 

온 방안에 찌걱 거리는 소리가 잔뜩 울려 퍼졌다. 이미 늘어질 대로 늘어진 사내의 허리는 잔뜩 녹진해 져서 흐트러진 지 오래였다. 삽입은커녕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루드빅이 내벽을 지분거리며 손장난을 하는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가 좋습니까? 두 개 가지고 만족 합니까. 부족할 텐데. 온통 외설스러운 말은 다 뱉어내며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밀어 넣어 내벽을 구경이라도 하듯 손가락을 옆으로 벌리는 행동에 사내는 소스라 쳤다. 공기의 차가운 느낌이 안쪽을 파고 드는 것만 같아서. 억지로 힘을 주어 뒤를 조이자 픽 웃으며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는 행동에 허리를 굽혔다. 전립선 부근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안쪽을 긁어내듯 손가락을 구부리는 행동이 오히려 더 애를 태우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넣어 달라 졸라보세요.”

 

“..........”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고작 남자의 페니스를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죽일 만큼 고팠지는 않았기에. 이를 악물고 시선을 피하자 내벽을 파고들던 손이 빠져 나가고 자신의 턱을 억지로 부여잡아 마주보게 하는 행동에 벨져는 미간을 찌푸렸다. 온통 그의 정액으로 범벅이 된 장갑의 미끈거리는 느낌이 좋지 않았으니까.

 

이름이 뭡니까.”

 

그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몸만 탐하면 그만이지. 안 그래? 그렇게 말하며 유일하게 가장 붉은 입술 끝을 말아 올리자 황금빛의 사내도 그만큼 환하게 웃었다. 아주 좋다며. 이래야 더 탐할 기분이 나지 않겠냐며. 동시에 다시금 입구 근처로 귀두가 문질러지며 들어올 준비를 하는 것에 입술을 깨물며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나 억지로 잔뜩 벌려지는 다리를 붙잡는 손아귀 힘은, 어찌 할 수가 없으니. 두어 번 제 것으로 입구를 두드리며 이내 다시 안쪽을 파고들기 위해 귀두 끝이 입구를 벌려 들어오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정확하겐 몸이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잔뜩 성나고 뜨겁게 달아 오른 것이 내벽을 파고드는 것이 워낙에 오랜만이니. 뱀파이어는 기본적으로 죽지 않는다. 심장이 없으니까. 피도 흐르지 않는다. 때문에 항상 체온이 낮다. 죽은 사람처럼. 그러나 하도 몸을 치대서, 마찰로 인해 피부가 점점 색을 갖춰 가는 것이 자신에게 너무 생경한 경험이라 사내는 몸부림을 쳤다. 기분 좋다는 느낌. 생전 가져보지 못한 기분이 자신을 잠식하려는 것에 발버둥을 치고 사내를 밀어내려 해 보지만, 루드빅은 더 강하게 파고들기 일쑤였다.

 

술보다 강하게 취하는 느낌. 오로지, 서로의 몸을 탐하고 다시 탐하는 느낌. 가쁜 숨을 턱턱 거리며 내 뱉을수록 같이 삐걱 거리는 침대 소리. 신음소리와, 살 부딪히는 소리가 방을 잔뜩 매워 갈 때 즈음, 루드빅은 고개를 숙였다. 물기 머금은 눈을 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내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 사내는 생각 외로 순순히 입을 벌렸고, 두 사람의 첫 키스는 그렇게, 뱀파이어의 기질을 숨기지 못한 사내의 실수로 인해, 깨물려진 혀에서 나는 피로 인한. 피 맛이 퍼지는 키스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 더는 못해.”

 

잔뜩 쉰 목소리. 이곳저곳, 물려서 자욱이 난 몸. 멍자국은 남지 않았지만 잇자국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몸과, 온통 정액과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몸이 다시금 제 것을 자극하는 것에 루드빅은 땀에 젖어 다시금 흘러 내려진 머리를 쓸어 올리곤 긴 숨을 내뱉었다. 자신의 것을 빼 내자마자 울컥 거리며 물 쏟아지듯 제 것을 내 뱉는 그의 속을 보며 알 수 없는 만족감에 취했다. 피 맛이 나는 것이 괜찮았는지, 연신 혀로 부드럽게 제 입 안을 훑어대던 사내의 행동에 루드빅은 다시금 속삭이듯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그리고 사내는 한참의 고민 끝에, 마치 자신의 기억 끝자락에 잠들어 있던 것을 꺼내듯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벨져. 성은 이젠 기억이 나지 않아.

 

 

*

 

 

[ 벨져 홀든 ]

 

[홀든가의 차남. 어린 시절, 고고한 성질 때문에...]

 

기본적으로 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뱀파이어지만, 가끔 수면이란 걸 즐겨보기도 한다며 잠들어 있는 사내를 서류 너머로 쳐다보았다. 피부의 혈색과, 머리카락의 길이는 조금 틀리지만 틀림없는 같은 모습이었다. 어쩌다 뱀파이어가 됐을까. 즐비한 자료집을 몆 장 더 넘겨보니, 안식의 문, 능력자의 안개 장치 오류로 인한 능력 변화 등의 이야기가 즐비하게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자료집을 닫아버렸다. 원하지 않는 변함. 원하지 않는 영생.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

 

마찬가지인가.”

 

혼자인 것은. 그렇게 생각하며 곤히 잠자고 있는 듯 보이는 벨져의 곁에 다가가 침대 맡에 앉아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보았다. 티 한 점 없는 얼굴에, 긴 속눈썹이 잠을 깨우지 않을 작정인 듯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고, 유난히 붉은 입술이 시선을 사로잡는 것에 루드빅은 고개를 내렸다.

 

의뢰는 끝났다.

 

이미 시장에게는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란 약조와 함께 수고비를 받았으니.

 

이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그렇게 생각 하며 다시금 벨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려는 순간 번쩍 뜬 벨져의 은빛 두 눈이 자신을 마주했다. 태양과 달이 만날 수 없듯. 이 빛과 저 빛은 어울릴 수 없는데.

 

당신 이름이 벨져 홀든 이더군요.”

 

“...........뒷조사 한 건가? 빠르기도 하지.”

 

피나 내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붙잡은 루드빅의 손가락을 깨물자 피 몇 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하게 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으려니 피를 빠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는 느낌이 나 손가락을 꿈틀 거렸다.

 

“..........”

 

가문이란 건.”

 

 

몇 모금 마시지도 않고 입을 땐 뒤 붉은 피로 입술을 축인 벨져는 다시금 고혹적인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런 무언가에 얽매일 것들에 대해선 떠올리지 않는 게 좋아.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엔 이젠 지쳤으니까. 벨져는 루드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이렇게 변하게 된, 모든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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